소설소재잡담

내 어린시절 우연히 들었던 믿지 못할 한 마디

하양녹 2022. 10. 24. 00:31

요즘 부쩍 아무 이유 없이 우는 일이 많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흩뿌려지는 것을 가만히 듣다 보면 문득 스스로 수필이라도 쓰고 싶어진다. 이걸 뭐라더라. 전기? ㅎㅎ

나는 태어나기를 좀 허약하게 태어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깨끗한 이불에서 일어나는 게 좀 힘들었다. 자다가 토를 해서 깨어난 적이 잦았다. 소화기관은 지금도 약해서 트름이나 방귀 냄새가 독하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학교가기 전에 항상 내 이불을 빨아주셨다.
엄마에게 나는 좀 특별한 딸이었다. 남아선호사상으로 나의 친가쪽에 서운해진 엄마는 언니와 달리 친가에 나를 보내지 않고 쭉 키우셨다. 나는 선천적으로 매우 조용한 아이였고, 옆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이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말썽 없는 갓난쟁이였다. 그리고 꽤 머리가 좋았어서 지금도 2살때 살았던 집 구조를 기억하고 있다. 언니보다 먼저 글을 깨치는 바람에 엄마가 나에게 걸었던 기대가 좀 있었다. 엄마는 내가 머리가 너무 좋아서 애늙은이 소릴 들을까봐 학교를 일찍 보냈다. 이건 지금까지 엄마가 나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사실 미안할 건 없었다. 일찍 학교에 간 것과 나의 울분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었으니까.
초등학생 때 생활통지문을 보면 [발표는 잘 하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문구가 고정적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나의 선천적인 특성이다. 나는 소꿉놀이보다 자석그림판에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선생님이 나를 위한답시고 소꿉놀이 무리에 끌고 가서 같이 놀아보자 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소꿉놀이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겐 아주 곤욕이었다. 이런 아이가 학교에 가면 학교폭력을 당하기 십상이다. 정말 너무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에겐 선례가 있었다. 유행하는 아이돌 그룹을 모른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던 언니를 겪고, 엄마는 나에게 유행가 테이프를 사주시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애를 소개시켜 주셨다.
그렇게 소개 받은 아이가 두 명인데, 내 생애 첫 친구이자 지금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와 신문물과 유행에 관심이 많아서 내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려준 아이였다. 첫 친구는 키도 크고 예뻐서 착한 애들 무리의 리더격인 아이였다. 타잔놀이도 하고 장기자랑도 나가는 그런 친구. 내가 지금까지 예쁜 여자들에 너그러운 이유가 이런 경험이 많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유달리 내게 친절했던 애들은 다 예뻤다... 아니면 친절해서 예뻐 보였나..?ㅎㅎ 아쉽게도 3년만에 이사를 가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지금도 참 괜찮은 사람이겠지.
두번째 친구는 만화책을 빌리는 법, 채팅을 하는 법, 오락실에서 DDR을 하는 법 같은 걸 많이 알려줬다. 신기했다 이외의 감상은 없다. 그냥 좋지도 싫지도 않은 친구. 결국은 유행에 대해 영 센스가 없는 나를 피해 다른 무리로 쏙 들어갔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친구였느냐? 전혀 아니었다. 보면서 알았겠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없던 아이였다. 엄마가 이불을 빨아줘도 고마운 줄을 몰랐고, 친구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게 소중한 줄을 몰랐고, 이 세상에 나만 느끼는.. 소위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진 다른 사람 따윈 안 보이다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친구와 노는 게 정말 신나는 일이구나 깨달았다. 정말 원없이 놀아봤다. 점심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 걸으며 구름을 보거나 땅따먹기를 하거나 피구를 했다. 그리고 정쟁이 시작됐다..(?) 또래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 다름에 대한 거부감으로 온갖 친구들이 서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피곤하게 했다. 나는 여느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힘 있는 무리와 적대 관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무리가 싫어하는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내가 따돌림의 대상이 되면 힘들어했다. 나는 심한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지만 뭔가 다른 애들과는 다른... 이상한 호승심 같은 게 있었다. 내가 죽고싶단 생각은 전혀 안했고 오히려 나를 따돌리는 애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은 그 애를 저주하겠다고 이름을 썼다가 한 번 불려갔는데, 그 애가 하는 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내 이름은 왜 썼어? 왕따 시키지 말라고? 내가 왕따시켰니?' ....글쎄요.. 어렸지만 저는 너 죽으라고 쓴건데요.ㅠㅠㅋㅋ 참 순진한 소녀들이었긴 하다. 나는 아직도 그 애가 그 때 죽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화가 나면 상대의 머리를 잡고 시멘트 벽에 쿵쿵 부딪혀서 죽이는 상상을 한다. 그 애한테 그랬고, 어느 선생에게 그랬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우습게 여기는 상대'에 한해서고 공포심이 극에 달하면 죽일 생각도 못하고 패닉에 빠진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술에 취해 나를 성추행한 놈에게 그랬고, 내가 만 19세가 되기 전에 성폭행 미수로 그쳤던 그 날의 미친놈에게 그랬다. 운이 좋았는지 그래서 나는 남성이라는 성별에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 조금만 못해도 실망보다 '그럼 그렇지'라는 감상이 먼저 떠오른다. 반대로 여성에 대해선 잘 휘둘리는 편이라 대학생 때 성정체성을 고민했고, 타로 같은 걸 보러 가도 혹시 동성애를 하는지 물어볼 정도로 '남성은 너를 흔들지 못하는데, 여성한테는 휘둘릴 수 있다'고 나온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 내 인생에 정말 힘들었던 사건은 다 여성에 의해서다. 남성에게 몸뚱이를 아무리 희롱당했더라도 그들과의 일이 큰 상처로는 남지 않았다. 나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나는 칭찬에 익숙한 아이였고, 우월감과 고양감을 느끼는 일에 열심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나는 달라, 같은 선민사상에 조금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인정받지 못할 만큼 내 능력이 형편 없다 판단되면 지나치게 비관적이 된다. 내가 죽음을 생각한 두 번 모두 같은 이유였다. 내 종교에서는 자살이 정말 터무니 없이 손해인 장사였고, 덕분에 나는 죽고 싶단 생각은 해봤어도 손해 보기 싫어서 참았다...ㅎ; 내게 종교가 생기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죽었을 수도 있었을까? 이럴 때 신께 감사하다.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ㅋㅋㅋ
어쨌든 나는 언제나 나의 존재감과 싸워왔다. 나의 죽음보다 나의 삶이 가치가 있는가? 내 일생의 질문이다. 나를 죽음에 가깝게 만든 말은 "그렇게 일해도 돈만 받으면 그만인가요?" "당신 한 명 때문에 몇 명이 힘들어 진다고요." "대체 제가 뭘 어떻게 더 해줘야 해요? 말해봐요." "분명히 제가 말했잖아요. 왜 그러는 거에요? 저 이제 정말 화나려고 해요."
나의 가치를 항상 시험하고 있는 나는 내가 이 사회에 쓸모있는 존재이길 바라며 살아간다. 그러다 이따금 이 공간에서 내가 사라졌을 상태가 있을 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콱 죽어버리고 싶어진다. 그건 정말 힘들고, 아프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구렁텅이다. 나의 능력이 모자란데 누가 대신 살아주겠는가? 아이유의 곡 중에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에서 아이는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을까 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일생을 거기에 엄마를 넣어왔다. 엄마는 겨우 나 같은 것을 위해 그 긴 세월을 그렇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것일까.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고, 세상이 엄마에게 너무 모질어서 분노했다. 사랑스러운 그 사람에게 왜 나 같은 것을 주셔서. 엄마가 너무 좋아서 항상 힘들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나 때문에 괴롭고 창피를 당할 때마다 내 머리통을 짓이겨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 죽지는 않을 테지만, 가끔 세상이 텅 비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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